어머니는 벌써 몇 년째 앓아누워 계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곱게 빗으시곤,
우리 남매를 불렀어요.
엄마는 마치 먼 여행이라도 떠나려는 사람처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정수야, 누나를 부탁한다.
니가 누나의 목소리가 돼줘야 해. 그럴 거지?"
엄마는 말 못하는 누나가 마음에 걸려
차마 눈을 감을 수가 없다며
나의 손을 꼭 붙잡고 당부를 하셨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며칠 뒤,
우리 남매의 손을 그렇게 하나로 맞잡고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먼 길을 떠나셨어요.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야간 고등학교를 겨우 마친 나는
서울에 직장을 얻어 상경했고,
누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혹처럼, 나를 따라다녔죠.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피곤에 절어 집에 돌아왔는데,
웬 앵무새 한 마리가 집에 있었어요.
옆에서 누나는 동네 아이들을 불러다 놓고,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죠.
"주주.... 주... 주우...."
앵무새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아이들도 뭐라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일은 그 후로도 며칠이나 반복됐죠.
"주욱 주욱...."
천식환자처럼 그렁그렁 대는 앵무새는 그날부터
내 늦잠을 방해하고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제발, 저 앵무새 좀 치워버릴 수 없어?"
나는 누나에게 벌컥 화를 냈지만,
누나는 내 성화를 못 들은 척 무시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생일.... 추카.... 생일... 추카!"
앵무새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누나가 건네준 카드에는 단정한 글씨로
이렇게 씌어 있었어요.
'생일 축하한다. 내 목소리로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생일축하! 목소리가 없는 누나가
난생 처음 내게 들려준 말이었습니다.
앵무새에게 그 한 마디를 훈련시키기 위해
누나는 그렇게 수 날을 혼자서 비밀작업을 했던 겁니다.
나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입안 가득히 미역국을 퍼 넣었습니다.
- 김정수 (새벽편지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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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음속에 담긴 수 많은 감정을
어찌 말로써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눈빛 한 번이, 포옹 한 번이
더 큰 사랑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칼릴 지브란은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다" 고 했지요.
- 오늘은 다른 수단으로 마음을 전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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