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밭 새벽편지

엄마 바보 똥

aka1978 2008. 11. 14. 10:48

우리 집 큰아이 이름은 해인이다.
해인이에게 얼마 전부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짐작컨대 앞니가 빠지고 있는 나이이다.

며칠 전 아침,
해인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시간이 되었을 때
'뭘 입고 갈래' 물어보지도 않고
푸른색 원피스를 꺼내 들었다.

그랬더니 그 시원스럽고도 세련되어 보이는
원피스를 죽어도 못 입겠다며 버티는 것 아닌가

웬만하면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는 편이었지만
이번에는 '엄마의 의견에 순종하는 법(?)’을
가르치리라... 작심하고
강제로 원피스를 입히고야 말았다.

물론 옷을 입히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회유와 협박의 온갖 수사가 던져졌고
마침내 벼락치듯 큰소리를 내고서야
해인이는 그 옷을 마지못해 입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의 일이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방문을 닫고 들어간 아이가
한참을 나오지 않는 것 아닌가?
궁금도 하고 또 강압적인 행동이
후회도 되어서 살짝 문을 열어 보았다.

해인이는 컴퓨터 옆에 붙은
작은 내 책상 옆에서 쪽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무엇인지 자세히 볼 마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화들짝 놀래는 거였다.

평소 '엄마 예뻐' 라는 쪽지를
자주 쥐어주던 아이었기에,
반성의 의미로 '엄마 예뻐' 가
적힌 쪽지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해인이는 놀란 토끼눈이 되어서는
손에 있던 쪽지를 슬그머니 책상 위에 뒤집어 놓고는
방안을 빠져나가는 것 아닌가?

얼른 해인이가 일부러 뒤집어 놓고 나간
쪽지를 집어들었다.
쪽지를 뒤집어 보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엄마 바보 똥"
큼지막하게 쓴 세 단어...

아이는 제 엄마가 강압적으로 한 처사를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신이 퍼부을 수 있는
최대의 욕설을 그곳에 써 놓고는
당황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쪽지를 보고 한바탕 웃기는 했지만 뒷맛이 씁쓸했다.

'제가 원하지 않는 것을 어른이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강제로 옷을 입게 한 것이
얼마나 싫었으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분풀이 방법을 찾았을까?'

그 쪽지를 들고 나와서 열심히 동화책을
읽는 척 하고 있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해인아, 이거 엄마가 절대로 안 잃어버릴게...!"
아이는 멋쩍어 하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제 어미를 돌아다보지도 않았다.

그날부터 우리 집 냉장고 위에는
'엄마 바보 똥' 이라고 써진 쪽지가
당당하게 붙어있다.

해인이가 내게 준 수많은 쪽지 중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엄마 바보 똥'

그 쪽지가 냉장고에서 떨어지는 날까지...
아니 우리 해인이가 나와 깊은
대화를 나눌 만큼 성장하는 날까지...

'엄마의 무조건적 권위의식'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도록 나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자극제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 이정아 (새벽편지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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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그리 중요치 않은 자존심으로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는 않는지...

오늘은 내 말을 하기보다
상대방의 말에 비중을 두고
'듣기'를 해 보시지요.





- 내 책상 앞에 단점을 써 붙여 보세요! -